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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방탄복' 감사 반발…감사원 또 흑역사 쓰나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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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직원이 부실 방탄복이라고 주장하며 방탄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감사원은 그제(18일) 군 당국이 100억 넘는 돈을 주고 성능 미달 방탄복 5만여 벌을 구매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 매체들은 일제히 "뚫리는 방탄복"이라며 방산비리가 터진 것마냥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감사원의 지적이 허술하고 언론의 비난이 과해도 예년 같았으면 꾹 참았을 군 당국과 업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미의 국방규격을 통과한 제품이고, 감사원의 실험 기준이 자의적이었다며 발끈한 것입니다. 감사원이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군 당국과 업체가 항변하는 것처럼 쏴도 쏴도 뚫리지 않는 방탄복은 세상에 없습니다. 강철 장갑처럼 튼튼한 소재로 두르면 안 뚫리겠지만 장병들은 무릎 꺾여 걷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벼우면서도 각 부위를 통틀어 몇 발까지 견디도록 기준을 정합니다. 문제의 방탄복은 한미의 이런 기준을 두루 충족했다고 합니다. 다만 감사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근본 없는 기준에 못 미친 것입니다.

감사원은 군 장비 감사를 하며 이런 소동을 종종 일으킵니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무리한 감사인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가 100억 넘는 혈세를 날리기도 했고, 아까운 국방과학자의 목숨도 앗아갔습니다. 영업비밀을 전 세계에 누설해 수출길을 막았습니다. 이번처럼 막 쐈더니 방탄복 뚫린다며 윽박지른 적도 있습니다. 엉터리 감사가 반복되면 국산 무기·장비 개발 의욕은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캡틴아메리카 방패 만들어야 하나

감사원은 방사청이 2021년 12월 5만 6,280 벌(107억 7,800만 원) 도입한 A 사의 방탄복 특정 부위에 소재를 덧대 방탄 성능을 조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재를 50겹 붙여야 하는데, 56겹 덧박음질한 방탄복의 상단과 하단 좌·우측에 총을 쏴서 합격 판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감사원은 평가에 참여한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직원 2명을 문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그제(18일) 입장자료를 통해 "국방부가 방탄복 표준 규격으로 사용하는 미국 국립사법연구소(NIJ)의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성능 시험을 했다"고 맞받았습니다. 이어 "56겹 부위가 NIJ 기준을 충족했을 뿐 아니라, 50겹 부위도 NIJ 기준을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방탄 성능을 입증하는 사격 방법은 해당 부위에 30도, 45도, 90도로 3발 쏘는 것인데, 감사원은 90도로만 쏴서 기준 변형량 44mm를 초과하도록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라고는 장담 못하겠지만 미군 방탄복에 못지않은 성능이라는 점은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파일용 사진 (김태훈)

▲ 방탄복 제작업체 A 사의 대표가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A 사 대표는 어제(19일)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A 사는 "56겹 덧댄 부위는 착용 중 유연성 강화를 위한 특허"라며 "방탄막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방탄성능을 추가로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역 군인들은 감사원의 이번 방탄복 감사 소동을 보며 혀를 찼습니다. 육군의 한 중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원의 품질과 성능 관련 감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고, 다른 중령은 "전장 환경에 무지한 감사원이 이권에 움직이는 사악한 제보자의 세치 혀에 놀아난 꼴"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죽음 부른 엉터리 감사

취재파일용 사진 (김태훈)

▲ 국산 대전차유도무기 현궁

2015년에는 감사원이 전력화가 시작된 국산 대전차유도무기 현궁을 감사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표적으로 사용하는 폐전차 조종 모듈의 서류상 수량이 애매하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개발업체인 LIG 넥스원과 하청업체가 "11개 모듈이 필요하다", "11번 시험평가를 받을 수 있는 모듈이 필요하다"로 각각 달리 이해하는 바람에 약간의 혼선은 있었지만 11번 시험평가는 이상 없이 치러졌는데, 감사원은 이런 점 등을 엮어 검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비난은 가혹했습니다. LIG넥스원의 상장이 연기됐고, 2015년 9월 14일 연구진 한명은 억울함과 공포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현궁 사건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감사원, 검찰, 언론 중 누구 하나 허망하게 떠난 국방과학자에게 유감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수출길 막은 엉터리 감사

취재파일용 사진 (김태훈)

▲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감사원은 국산 헬기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574억 원을 가로챘다며 방사청으로 하여금 574억 원을 환수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재판 결과, 감사원이 방산 회계 방식을 몰이해해 환수 조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방사청은 원금 574억 원에, 이자 100억 원 이상을 추가해 뱉어냈습니다. 감사원의 엉터리 감사에 나랏돈 100억 원을 날린 것입니다.

감사원은 또 해당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엔진, APU, 각종 컴퓨터, 레이더 경보 수신기, 후방동체, 꼬리로터 블레이드, 꼬리로터 허브, 꼬리로터 조종간, 기록장치, 기어박스, 구동축 등 50여 개 핵심부품의 제조원가와 일반관리비, 이윤 등을 1원 단위까지 상세하게 감사원 홈페이지에 올려버렸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영업비밀이고, 경쟁사들에게는 꿀 같은 데이터입니다. 이후 수리온 수출 실적은 없습니다.

감사원은 2016년에도 이번처럼 뚫리는 방탄복 감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뚫리지 않는 방탄복이 있는데도 약한 방탄복을 샀다며 군 당국을 몰아붙였습니다. 감사원이 좋아하는 뚫리지 않는 방탄복은 너무 무거운 데다 개발이 막 끝난 시점이라 전력화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였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군 당국은 방산비리 프레임에 엮여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감사원의 국산 무기와 장비에 대한 감사는 자주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한 톨의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혈세가 버려져도 눈 깜짝 안 합니다. 오히려 부당 감사의 책임자들은 어려움 없이 진급했고, 한 인사는 지난 정부에서 다른 기관도 아닌 방사청의 청장으로 영전해 국방과학자와 군인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이번 방탄복 감사도 감사원의 흑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감사원도 좀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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